살짝 스치기만 해도 비명이 나온다면, 당신은 꾀병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저는 2022년 겨울, 누나가 단순 손목 골절 이후 정확히 그 상황을 겪는 걸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옷이 팔에 닿기만 해도, 바람이 불어도, 물이 한 방울 떨어져도 비명을 질렀습니다.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는 그런 병입니다.

깁스를 풀고 나서 시작된 지옥
누나가 처음 병원에서 CRPS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솔직히 그 이름조차 낯설었습니다. 단순 삔 손목이 이 지경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깁스를 푼 직후부터 손이 붓고, 피부색이 변하고,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정형외과에서는 “재활하면 나아진다”고 했지만, 통증은 오히려 심해졌습니다.
CRPS는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만성 신경병성 통증(neuropathic pain)이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여기서 신경병성 통증이란, 말초 또는 중추신경계의 손상이나 기능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으로, 실제 자극의 세기와 무관하게 뇌가 과도하게 고통 신호를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반적인 염좌나 골절 후 통증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입니다.
일반적으로 “뇌의 통증 조절 회로가 망가져서 생긴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표현이 조금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말초 신경 손상 이후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 일어나는 과정, 교감신경계의 이상 반응, 국소 염증 반응이 복합적으로 얽힌 다인자 질환입니다. 여기서 중추 감작이란 척수와 뇌가 통증 신호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현상으로, 쉽게 말해 “통증 감지 시스템 자체가 오작동하는 상태”입니다. 뇌가 고장났다는 단순한 설명보다 훨씬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 기능 이상도 이 병의 핵심 특징 중 하나입니다. 자율신경계란 심장 박동, 혈관 수축, 체온 조절 등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신경 체계를 말합니다. 누나의 손이 차가워지고 색이 변했던 것도 바로 이 자율신경계 이상 때문이었습니다. 통증이 추위나 습한 날씨에 악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CRPS의 주요 증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벼운 접촉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이질통(allodynia)
- 피부 온도·색깔 변화, 부종 등 자율신경계 이상 징후
- 해당 부위 근육 위축 및 관절 운동 범위 감소
- 수면 장애와 우울증 등 2차 심리적 합병증
- 통증 부위 피부의 윤기·땀 분비 변화
척수 신경 자극술과 이식형 약물 주입기, 실제로 어떤 차이가 있나
누나는 8개월 동안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습니다. 약효가 있긴 했지만 구역질, 인지 저하 같은 부작용이 심해서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척수 신경 자극술(SCS, Spinal Cord Stimulation)을 먼저 고려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이식형 약물 주입기(intrathecal drug delivery system) 수술을 선택했습니다.
척수 신경 자극술이란 척수에 전극선을 삽입하고 전기 자극을 가해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경로를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치료법입니다. 쉽게 말해, 통증 신호 위에 다른 신호를 겹쳐서 고통을 덜 느끼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환자가 리모컨으로 자극 강도를 직접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이식형 약물 주입기는 척수강 내(intrathecal space), 즉 척수를 감싸는 뇌척수액 공간에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약물 소요량이 극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마약성 제제 1mg을 이 방식으로 투여하면 경구 복용 300mg과 동등한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부작용을 줄이면서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수술 후 누나의 통증 강도는 10점 만점에서 8~9점이었던 것이 6~7점 수준으로 내려갔고, 가벼운 산책이 가능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시술이 “통증을 완전히 없애준다”고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기대를 조금 낮춰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 수술들은 통증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만성 통증을 조절 가능한 수준으로 낮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수술 후에도 습한 날씨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여전히 통증이 심해집니다. 완치가 아닌 관리의 영역입니다.
CRPS 치료는 단일 과목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가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입니다. 제가 직접 느낀 것도 그렇습니다. 누나의 경우 통증 조절만큼이나 우울증 치료가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CRPS 환자 70%가 1년 안에 회복된다는 말, 믿어도 될까
CRPS를 공부하다 보면 “진단 환자의 70% 이상이 1년 이내에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내용을 접하게 됩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본 현실과 너무 달랐으니까요.
이 수치는 조기 발견, 적극적 치료, 심리적 지지가 충분히 이뤄진 경우를 전제로 한 연구들에서 주로 나오는 수치입니다. 실제로 17년 넘게 투병 중인 환자들, 마약성 진통제를 하루 열 알 이상 복용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어느 쪽이 ‘대표적인 현실’인지는 조기 진단 여부와 치료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국제통증연구학회(IASP)는 CRPS의 진단 기준인 부다페스트 기준(Budapest Criteria)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다페스트 기준이란 감각 이상, 혈관운동 이상, 발한 및 부종, 운동 기능 이상 등 네 가지 범주의 증상 중 다수가 충족될 때 CRPS로 진단하는 국제 표준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과거보다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졌고, 그만큼 조기 치료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 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히 나아지는 것’에 너무 빨리 만족하거나, 반대로 ‘완치’를 기준점으로 잡고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나도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만, 혼자 산책을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8개월 전과는 전혀 다른 삶입니다. CRPS 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립감은 외부에서는 좀처럼 이해받기 어렵습니다. 겉으로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 사람이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는 사실 자체가 주변의 의심을 낳기도 합니다. 그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CRPS는 아직 정복된 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조기에 발견하고, 통증의학과·재활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가 함께 개입하면 분명히 나아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비슷한 상황에 있는 환자나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3Asa0-20d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