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수개월 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작년 여름, 아버지가 “요즘 너무 피곤하다”고 하실 때만 해도 저는 그냥 나이 탓이라고 넘겼습니다. 피로와 어지러움이 백혈병 초기 증상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빈혈 증상이 백혈병 신호일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피로와 어지러움은 사실 워낙 흔한 증상이라 백혈병을 바로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빈혈, 갑상선 기능 저하, 과로, 스트레스 등 수십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혈병을 지나치게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과잉 불안을 부를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의견을 반은 이해하면서도 반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 피로와 어지러움이 얼마나 지속되느냐, 그리고 다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느냐입니다.
백혈병의 증상이 빈혈로 나타나는 이유는 조혈 기능에 있습니다. 백혈병은 골수 내에서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가 비정상적으로 분화하면서 발생합니다. 여기서 조혈모세포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모든 혈액 세포의 원천이 되는 세포를 말합니다. 이 세포가 종양 세포에 자리를 빼앗기면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줄어들고, 그 결과 피로감, 어지러움, 호흡 곤란 같은 빈혈 증상이 나타납니다.
아버지의 경우 어지러움과 숨이 찬 증상이 여름 내내 지속됐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포함해 가족 모두 단순 피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증상이 석 달 가까이 이어지자 종합검진을 권했고, 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수치 이상이 잡혔습니다. 이후 골수 검사(bone marrow biopsy)를 통해 확진을 받았습니다. 골수 검사란 골반 뼈에 검사침을 삽입해 골수액을 뽑아 종양 세포 여부와 유전자 이상을 동시에 확인하는 검사입니다. 아버지는 그 과정이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하셨는데, 검사를 받고 나서도 “이 정도면 참을 수 있다”며 버티셨습니다.
피로, 어지러움 외에 아래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단순 피로로 넘기지 않고 혈액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 이유 없이 멍이 자주 들거나 작은 상처도 지혈이 오래 걸린다
- 열이 자주 나고 감기 증상이 반복된다
- 목이나 사타구니 쪽 림프절이 부어오른다
- 극심한 피로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혈액암은 국내 전체 암 발생의 약 6~7%를 차지하며, 조기 발견 시 치료 성적이 크게 달라집니다.
골수 검사 이후 조혈모세포 이식, 어디까지 희망을 가져도 될까
확진 이후 저희 가족이 가장 먼저 찾은 정보는 생존율이었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유전자 및 염색체 검사 결과에 따라 예후군을 세 단계로 나눕니다. 좋은 예후군은 조혈모세포 이식 없이도 평균 70% 이상이 장기 생존하는 반면, 안 좋은 예후군은 이식 없이 5년 생존율이 10~20%에 불과합니다. 이식을 진행하면 30~40%까지 올라갑니다. 수치만 보면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이 수치가 20년 전보다 훨씬 나아진 결과라는 점에서 오히려 희망을 찾았습니다.
치료의 핵심은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allogeneic hematopoietic stem cell transplantation)입니다. 이 치료법은 항암제와 전신 방사선으로 환자의 골수를 비운 다음, 공여자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수혈하여 새로운 혈액 체계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조직 적합 항원(HLA, Human Leukocyte Antigen)입니다. HLA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데 쓰는 단백질로, 이식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 8개 항원이 모두 일치하는 완전 일치 이식이 이상적이지만, 최근에는 항원 4개만 일치하는 반일치 이식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현재 조혈모세포 이식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수치와 의학 정보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실제 이식을 앞둔 환자 본인과 가족이 느끼는 불안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치료 성적 향상만 강조하는 정보들이 가끔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이식 과정에서의 감염 합병증, 이식편대숙주반응(GVHD)의 위험, 경제적 부담은 수치 뒤에 가려진 현실입니다. 여기서 이식편대숙주반응이란 이식된 공여자의 면역 세포가 환자의 정상 조직을 공격하는 부작용으로, 이식 후 관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합병증 중 하나입니다.
식이 관리도 생각보다 훨씬 중요했습니다. 항암 치료 중에는 호중구(neutrophil), 즉 세균을 직접 제거하는 백혈구의 일종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묵은지나 장류처럼 곰팡이 감염 위험이 있는 발효 식품은 피해야 합니다. 단백질 섭취도 하루 손바닥 크기 분량의 고기에 해당하는 50~60g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었는데, 직접 챙겨보니 식단 관리 자체가 치료의 일부라는 게 체감됩니다.
보건복지부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혈액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은 꾸준히 높아져 2022년 기준 약 61%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향상이지만, 그 수치 안에 여전히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피로와 어지러움이 수주 이상 지속된다면, 일단 혈액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단순 피로일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그 낮은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하는 것이 치료 성적을 결정짓는 첫 번째 선택입니다. 아버지가 “완치될 거다”라며 골수 검사의 고통을 버티셨듯, 조기 발견과 적극적인 치료가 맞물려야 희망도 숫자로 바뀝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의료진을 믿고, 가족이 함께 버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의심될 경우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dHJiwSslNM